교과서를 읽어주는 환자.

한 환자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몇가지의 증상만을 호소했었지만, 문진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다른 증상들을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증상들이 도무지 어떤 종류의 병인지 알기 어렵지만.. 그건 당연한 거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자분들은 의학 교과서를 읽지 않거든요.

다행이라는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상과 비슷한 병을 교과서(요즘은 구글도 포함시켜야겠군요.)에서 발견하게 되면 다른 증상들까지 신기하게 생기는 경우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두통이 있다면.. 이것은 뇌종양! 기침을 했다면 이것은 폐결핵! 요즘 자도자도 졸린다 싶으면 아프리카 수면병! .... 많이 과장했지만,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불행인 경우는.. 교과서적인 환자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기때문이예요. 한가지의 증상이나 병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건강을 지닌 사람이 별로 없으니 당연하게도 온갖 증상들이 섞여있어서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가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게 중요하지요.

여러 의료업 종사자들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것 같나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똑같아요. 아침에 해가 떳다던가, 오늘도 물에서 물맛이 난다던가 하는 언제나 보는 흔한 일들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뭔가 특이하고, 신기하고, 듣는 사람에게 '와! 정말?' 이란 반응을 이끌어 낼 만한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 특이하고 신기한 케이스는 뭐가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병들입니다. 그게 뭐가 특이하고 신기하냐고요? 그러니까, 이건 마치 병리학 교과서의 특정페이지가 사람으로 환생해서 현실세계에 강림한것과 똑같아요. 특정 성별, 나이, 인종, 신체조건, 생활습관들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데다, 증상까지도 판에 박은듯 똑같거든요. 

'지난번 한 환자를 봤는데 완전히 고전적인 ~~~의 증상이었다니까! 여기가 ~~고 ~~검사에 양성반응이 나오는거 있지?'
'오.. 정말? 그럼 **검사도 양성?'
'그랬다니까!'
'대단한데~!'

이런식이지요. 흔히들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케이스'라고 부르는 그런 케이스는 치료에도 교과서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고맙다고 하는 환자에게 오히려 저를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만들 정도예요.
...
하지만, 그만큼 희귀하고 소중한 존재기에 자주 뵈올수는 없다는 점이 참 안타깝지요.. ;)




p.s. 이게 얼마만의 Scrub 카테고리인가요....

p.s. 혹시나 해서 추가하지만, 서로 저런 이야기를 할때에는 환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정확한 방문날자 같은건 밝히지 않습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이야기거든요.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

by Charlie | 2007/12/01 15:01 | Scrub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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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7/12/01 15:26
어? 의료 계통에 있으셨어요? .... 전 완전히 요식 업계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Commented by 산왕 at 2007/12/01 15:30
하우스를 보니 병명 찾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정도의 인식은 생기더군요. 물론 '닥터 하우스'이니 언제나 성공하지만요^^;
Commented by 키리에 at 2007/12/01 17:10
저도 문진얘길하시니 하우스가 생각나네요. 늘 여러 증상을 차례대로 없애다가 멀쩡하던 환자를 거의 반 죽게 만드시는 하우스님..ㅋㅋ 그래도 늘 완치시켜주시지만.
Commented by ☆션☆ at 2007/12/01 22:21
저 담당하던 선생님이....
이렇게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이 참 좋으시다고 하셨던 기억이...
킁킁...
전 아마도 고전적인 환자였었나봐요. 아하하하핫.
물론 지금은 너무나 건강합니다만.. ^^;;;
Commented by 바람사슴 at 2007/12/01 23:16
고전적이지 않은 케이스는 환자도 이것저것 검사하느라 힘들던걸요.
고전적인 쪽이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더 좋은거 같아요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07/12/01 23:37
저는 제 데이타가 아주 고전적으로 결과가 나와서 괴롭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 논문을 쓰지요, 이분들아.... 하고. ;;;;;;

한 편 저는 좀 골치아픈 환자였겠군요. 항체는 안 생기고, 마취제는 반정도만 쓰면 벌써 헤롱헤롱 맛이 가고..... ^^::::::
Commented by byontae at 2007/12/02 01:18
기생충도 텍스트북에 나오는것 처럼 생긴 녀석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죠.
전형적인것일수록 찾기 힘들다는것이 또 이바닥의 매력(이자 저주)
Commented by Charlie at 2007/12/02 06:48
파파울프/ 요식업계분들이 들으시면 화내요~ ;) 부족한 제솜씨로 어떻게~

산왕/ 의료드라마가 그렇지요.. 의외로 환자가 잘 안죽는 닥터 하우스..

키리에/ 그 뻔한 공식이긴 하지만 드라마를 워낙 잘만들어서 재미있더라고요. :)

*션*/ 건강한게 좋습니다. :)

바람사슴/ 더 좋은것은 아프지 않는것이겠지만요. :)

현재진행형/ 마취가 잘 들으시는 체질인가봐요? 간이 약하신가요? 그런데 논문쪽은 정말 새로운게............ 없죠..;

byontae/ 그러니까 텍스트에 실리는것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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